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국내 감독들이 추천한 책:스토리, 시선, 정서

by neweek 2025. 10. 9.

영화감독의 세계관과 연출력은 그가 접해온 예술과 사유의 깊이에 의해 형성됩니다. 특히 한국 영화감독들은 서사적 깊이와 정서적 밀도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며, 그만큼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창작의 자양분으로 삼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한국의 대표 영화감독들이 실제로 언급한 추천 도서와 그 책들이 어떻게 작품 세계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펴봅니다. 스토리 구성, 시선의 정리, 정서적 뉘앙스를 키워드로 책과 영화의 연결고리를 함께 분석해 봅니다.

스토리를 키운 문학적 원천

한국 감독들은 영화의 뼈대가 되는 '이야기'를 구성하기 위해 다양한 문학작품을 탐독해 왔습니다. 특히 고전 문학이나 사회적 주제를 담은 소설은 서사의 틀을 고민할 때 많은 영향을 줍니다. 봉준호 감독은 자신의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준 책으로 조지 오웰의 『1984』와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을 자주 언급합니다. 이 작품들은 단순한 미래 예언서가 아니라, 체제 비판과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어, 영화 <설국열차>나 <옥자>와 같은 작품에 철학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시인 출신답게 문학에 대한 애착이 남다릅니다. 그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과 『페스트』를 비롯해 한강의 『채식주의자』 같은 현대 문학 작품에도 깊이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의 영화 <시>, <버닝>은 문학적 구성을 따라가며, 이야기의 중심이 내면의 서사와 철학으로 채워지는 특징을 보입니다. 이처럼 문학 작품은 단순히 이야기의 재료가 아니라, 감독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연출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근본적인 동력이 됩니다. 책 속 문장은 영화 속 대사로, 글 속 정서는 장면의 정조로 변주되며, 관객에게 더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시선을 바꾸게 한 시각예술 서적

연출자에게 '시선'은 단순한 촬영 기술을 넘어, 세상을 보는 방식 자체를 의미합니다. 많은 한국 감독들이 시각예술 서적을 통해 프레임 구성, 색감, 카메라 워킹의 감각을 키웠다고 고백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종종 영화 연출의 기초로 사진집과 회화책을 꼽습니다. 그는 “사진 한 장이 인물의 감정을 완벽히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며, 리처드 아베던과 같은 인물 사진작가의 작품집을 통해 인물 중심 구도를 연구했다고 말합니다. 또한 쿠르베, 카라바조 등 고전 회화를 즐겨보며, 빛과 명암의 대비에서 연출적 영감을 얻는다고 밝혔습니다. 김기덕 감독은 다큐멘터리 사진집과 미술 이론서를 자주 언급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본성과 폭력성, 그리고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자연 다큐멘터리부터 종교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 자료에서 착안을 얻었습니다. 그의 작품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이런 미적 사고가 집약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감독들이 읽는 시각예술 서적은 영화 연출의 기술적인 면뿐 아니라, 감성적 직관과 시선의 깊이를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이를 통해 영화는 단순한 ‘장면’이 아닌, 하나의 ‘시선’이자 메시지를 담은 예술로 완성됩니다.

정서를 이끄는 철학과 에세이

한국 영화는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다루는 특성이 강합니다. 때문에 많은 감독들이 철학서, 심리학서, 에세이 등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러한 독서 습관은 작품 속 인물의 감정선과 이야기의 톤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줍니다. 홍상수 감독은 장 뤽 고다르의 글과 영화 철학서를 자주 언급하며, 그의 일상적 대사와 단순한 구조 속에서도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참고했다고 말합니다. 또한 니체의 『즐거운 학문』, 파스칼의 『팡세』 같은 철학서는 인물의 사고 구조를 설계할 때 많은 영향을 준다고 밝혔습니다. 임상수 감독은 프랑스 실존주의 문학과 현대 에세이들을 자주 읽습니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사회적 압박이 어떻게 표면으로 드러나는지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며, 이를 영상 언어로 풀어내고자 합니다. 감정의 흐름을 주도하는 연출은 단지 배우의 연기나 음악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감독이 읽은 철학과 삶의 태도, 질문들이 장면 속에 녹아들며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정서적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독서는 감독에게 ‘감정의 사전’을 제공하는 셈입니다.

한국 감독들이 참고하는 책은 단순한 연출 매뉴얼이 아닙니다. 그들은 문학과 철학, 시각예술을 통해 이야기를 설계하고, 시선을 정립하며, 정서를 전달합니다. 창작의 깊이를 더하고 싶은 영화 지망생이나 콘텐츠 기획자라면, 감독들이 자주 읽는 책들을 따라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상상력과 표현의 폭을 넓힐 수 있습니다. 영상의 뿌리는 결국 ‘읽기’에서 시작됩니다.